전등사
강화도 온수리에 위치하고 있는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신라로 불교를 전파하러 가던 아도화상이 잠시 머무르며 지은 절로 381년(소수림왕 11)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는데, 그 후 고려 제27, 28, 30대의 충숙왕(忠肅王)·충혜왕(忠惠王)·충정왕(忠定王) 때에 수축하였고, 1625년(인조 3)과 1906년에도 중수하였으며, 또 일제강점기에도 두 차례 중수하였다고 한다.
전등사라는 명칭은 충렬왕(忠烈王: 1274∼1308)의 비 정화궁주(貞和宮主)가 절에 옥등(玉燈)을 시주를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강화도에서 가장 큰 사찰인 전등사는 정족산성과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터 등 많은 유물이 남아 있다.
1719년부터 1910년까지는 전시에 대비하여 전등사의 최고 스님에게 도총섭의 직위를 부여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인 1912년에는 전국 6개군의 34사찰을 관리하는 본산이었다.
전등사로 들어가는 문은 정문인 삼랑성문으로 동문과 남문이 서로 이웃해 있다.
전등사 경내
전등사로 들어가는 삼랑성문인 동문이다.
동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가 서 있다.
조선 말기의 무신인 양헌수(梁憲洙, 1816∼1888)는 헌종 14년(1848)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고, 철종 때 참상관이 되었다. 그 후 제주 목사로 부임하여 전임 판관 백기호의 탐학을 징벌해 제주도민으로부터 칭송을 받는 목민관이였고,
1866년 병인양요가 발발하자 정족산성의 수성장이 된 양헌수는 별군관 등 367명을 이끌고 광성보의 손돌목을 지키게 된다. 그런데 프랑스군이 물밀듯이 밀려들자 양헌수는 몰래 군대를 이끌고 정족산성에 매복하였고 10월 3일 프랑스 해군대령 올리비에는 부대원 160명을 이끌고 전등사에 있는 유물들을 약탈하러 들어왔다가, 매복해 있던 양헌수 군대는 치열한 전투에서 많은 무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리고 마침내 프랑스군을 섬멸시켜 프랑스군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한 승전보로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은 강화도에 있던 많은 유물들과 서적들을 침탈했고 남은 유물, 서적, 건물들을 소실시켰다.
전등사로 들어가는 다른문인 남문 전경이다.
전등사 경내로 오르면 먼저 불교경전을 넣고 한바퀴 돌리면 경전을 읽은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는 윤장대가 들어온다.
전등사의 대문으로 서해 바다의 드나듦을 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이름 붙은 대조루이다. 높이가 낮아서 자연히 고개를 숙인다
전등사 경내이고 대웅보전이다.
대웅보전의 처마밑에 있는 발가벗은 여인이 쪼그리고 앉아 힘겹게 처마를 떠받치고 있는 나녀상
대웅전 공사를 맡았던 도편수가 절 아래 주막 주모와 사랑에 빠져 번 돈을 모두 가져다 주었는데 공사를 마칠 무렵 주모가 도망을 갔고, 이에 도편수는 평생 부처의 말씀을 들으며 죄를 뉘우치기를 바라며 대웅전 처마 네 귀퉁이에 주모의 형상으로 나녀상을 새겨 놓았다 한다.
전등사 범종
높이 1.64m, 밑지름이 1m인 중국 송나라 때 동종이다. 종몸의 아래 위에 8개의 사각형 구획을 마련하고 그 안에 새긴 명문 내용으로 이 종이 북송(北宋) 철종 소성(紹聖) 4년(1097)에 제작한 하남성 백암산(百巖山) 숭명사(崇明寺)의 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 종이 아닌 중국의 종으로 용두에 음통이 없어 우리 종과 확실히 구분되며, 기존의 전등사 범조은 일제 말기 군수물자 징발로 공출당했는데, 전등사 주지스님이 해방이 되자마자 일제 때 빼앗겼던 종을 찾기 위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천 항구를 뒤지고 다니다가 군기창 뒷마당에 있던 현재의 범종을 갖다 놓았다고 한다.
전등사 사고
선조 39년(1606)부터 마니산에 사고를 설치해 보존해오던 '조선왕조실록'의 서책들을 현종 1년(1660)에 정족산성 사고로 옮겼다. 이 서책들은 다시 강화읍내에 있는 외규장각으로 옮겨졌다가 프랑스군에게 화를 입었고, 얼마 남지 않은 서책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은 전등사를 감싸고 있다. 삼랑성에는 본래 4개의 성문과 누각이 있었는데 동쪽과 북쪽의 성문과 누각은 없어졌고 남문은 1976년에 중수·복원되었다.
강화도의 성 대부분이 토성인 데 비해 삼랑성은 견고한 석성(石城)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성 주위는 약 2.3㎞, 높이 2.3m∼5.30m이다. 현재 전등사 입구인 삼랑성문은 당시의 동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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