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용문사 07. 11. 25
용문사(龍門寺)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新羅 신덕왕(神德王) 2년(913) 대경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일설에는 敬順王(927~935)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하였다고 한다. 高麗 禑王 4년(1378) 智泉大師가 개풍 敬天寺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고 朝鮮 太祖 4년(13950 조안화상이 중창하였다. 세종 29년(1447) 수양대군이 모후 소헌왕후 심씨를 위하여 보전을 다시 지었고 세조 3년(1457) 왕명으로 중수하였다. 성종 11년(1480) 처안 스님이 중수한 뒤 고종 30년(1893) 봉성대사가 중창하였으나 순종 원년(1907)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들 불태웠다.
1909년 취운스님이 큰방을 중건한 뒤 1938년 태욱스님이 대웅전, 어실각, 노전, 칠성각, 기념각, 요사 등을 중건하였으며, 1982년 선걸스님이 주지로 취임하여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 일주문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경내에는 권권이 지은 보물 제531호 정지국사 부도 및 비와 천연기념물 제30호 은행나무가 있다.
용문사의 은행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세자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심었다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를 내려 성장한 것이라고도 한다. 이 나무는 오랜 세월 전란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 남았던 나무라 하여 천왕목(天王木)이라고도 불렀으며, 조선 세종 때에는 정3품 이상의 벼슬인 당상직첩(堂上職牒)을 하사 받기도 하였다. 정미년 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절을 불태웠으나 이 나무만은 화를 면했으며, 옛날 어떤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고자 톱을 대는 순간 피가 쏟아지고 하늘에서는 천둥이 쳤다고 한다. 또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에는 이 나무가 소리를 내어 그것을 알렸으며, 조선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떨어졌다고 한다